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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0세기 최강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괴짜 중의 괴짜!

by cmyphoto's 2025. 4. 2.

6월의 뉴욕에 나타난 굴드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면서 식수로 사용할 두 개의 물병을 지니고 5개의 약병과, 그 유명한 의자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주에 들어가기 전 굴드는 두 손을 20분간 더운 물에 담그고 자신이 가져온 수건으로 손을 닦아 냈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CBS의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허밍을 녹음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글렌 굴드

 

 

20세기 최강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봐왔던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아니다. 등받이가 있는 낡은 의자에 기대앉아 연주하는 모습이나 오른쪽 다리 위로 왼쪽 다리를 올려 꼰 채 페달을 밟는 충격적인 모습까지, 게다가 피아노 소리와 함께 들리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할 말을 잃게 만들게 하곤 한다. 또 어딘지 모르게 구김 많아 보이는 옷차림새마저도, 범상치 않다.

 

굴렌 굴드는 토론토의 사우스우드가 32번지에 자리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천부적인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갓 태어난 굴드가 바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의사가 '이 아이는 커서 피아니스트 아니면 의사가 되겠군'이라고 했다고 한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칠레 출신 피아니스트인 알베르토 게레로밑에서 배웠다. 글렌은 어린시절부터 은둔형 폐인끼가 충만했다. 그의 어린시절 친구인 로버트 풀포드는 '글렌은 어린시절부터 늘 혼자있기를 좋아했어요'라고 할 정도였다.

 

 

굴드는 글 보다 악보를 먼저 익힌 음악 신동이다. 그의 부모는 나서서 음악 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아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다. 그러나 15세에 공식 데뷔를 한 이후 평생을 존경받는 연주자로 살았다.

 



글렌 굴드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음악적 해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음악 신동으로 성장했으며, 15세에 공식 데뷔를 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굴드는 특히 바흐의 음악을 깊이 있게 해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두 번째 앨범인 1981년 유작 앨범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중요한 기록이다.

그의 데뷔 앨범인 1956년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180만 장 이상 판매되며 그의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굴드는 또한 녹음 과정에서 자신의 피아노 선택에 대한 후회를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예술적 완벽함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그의 앨범을 감상하는 것은 굴드의 세계에 빠져드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Bach, Goldberg Variations (rec. 1955)

 

 

[HD] Bach's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 1981 record] (BWV 988) 1981년 유작 앨범. 마흔아홉의 굴드는 이 녹음을 하는 동안 야마하 사의 피아노를 선택한 것에 화를 내기도 했다. 발매 1년 후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이 연주가 흘렀다.

어떠셨나요? 25년의 시차를 두고 굴드가 녹음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데뷔이기도 했고 유작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어딘지 모르게 감동적이고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그는 유작 앨범을 두고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도 하네요. 그럼 지금부터 또 앞으로도 여러분이 그의 이름을 들을 때 떠올리게 될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드릴게요. 과연 괴짜 중의 괴짜로 불려 마땅한 굴드의 기행들, 놓치지 마세요!

 

 

만 13세의 글렌 굴드가 가장 사랑했다고 말한 잉글리시 세터 종인 ‘닉’과 작고 귀여운 새 ‘모차르트’와 함께 피아노 앞에서 찍은 사진.

 

글렌 굴드는 어린 시절 내내 친구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운동을 싫어했고, 단체 생활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그는 동물을 친구처럼 여겼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 본 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요. 사람의 말 한마디 못하지만, 때로는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바로 반려동물이죠! 그 또한 또래의 친구와 어울려 뛰어노는 일보다 반려동물과 지내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던 겁니다.

굴드가 선택했던 동물은 꽤 다양합니다. 토끼, 거북이, 스컹크, 금붕어, 앵무새, 여러 종류의 개와 함께 지냈습니다. 종종 호숫가 근처의 별장에서 지낼 때는 자전거를 타고 소들에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그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물 보호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늙고 병든 동물을 보호하며 지내고 싶다고요. 안타깝게도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네요. 그렇지만 굴드, 당신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스물다섯의 글렌 굴드가 바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 BWV 1056>를 연주하고 있다.

 

글렌 굴드는 그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로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피아노 연주와 함께 큰 소리로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장 잘 알려진 기행입니다. 이는 청중들에게 놀라움과 동시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죠.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연주 중에 허밍을 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굴드는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이러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음악 교사로서 발성 연습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은 굴드의 이 같은 습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피아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콧노래를 부른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결합되어야 완벽한 음악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 당시 방독면을 사서 스튜디오에 들어갔다는 일화는 그의 유머 감각과 독창적인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은 굴드가 단순한 피아니스트가 아닌, 음악과 예술에 대한 깊은 열정을 지닌 인물임을 증명합니다. 그의 연주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악수 금지 선언"

 

“피아니스트의 손은 가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악수를 피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그저 부상 가능성을 막자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글렌 굴드

 

 

굴드의 악수 금지 선언은 그의 독특한 예술적 철학과 삶의 방식이 잘 드러나는 사례입니다. 그가 손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신체적 안전을 넘어서, 음악적 표현에 대한 깊은 애착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손은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는 것은 그의 경력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또한, 굴드는 그의 기행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예술적 신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악수 금지는 단순한 관습의 거부가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진정성과 독창성을 상징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음악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결국, 굴드의 악수 금지 선언은 그가 음악가로서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예술을 지키고자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굴드의 독특한 행동과 신념은 그의 예술적 열정과 함께 개인적인 불안과 건강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줍니다. 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닌 것은 그가 건강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나타내며, 이는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건강염려증으로 인한 불안감이 그를 더욱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끌었고, 이는 그의 음악적 경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겠죠.

특히, 1959년의 어깨 사건은 굴드의 심리적 불안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단순한 신체 접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고, 연주를 취소하며 소송까지 벌인 것은 그의 예술적 자존심과 건강에 대한 집착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요구가 지나쳤던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굴드가 자신의 몸과 예술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반응은 그의 음악적 정체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결국 그는 자신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음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Bach, Art of the Fugue, #1, 2, 4 (rec. 1957)
Gibbons, Fantasy in C major & Allemande (Italian Ground) (rec. 1968)

 

Bach, Partita No.4 (rec.1979)

 

Bach, Goldberg Variations (rec. 1981)

 

 

굴드의 예술적 여정과 독특한 행동은 그가 음악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평생의 피아노인 CD318과의 관계는 단순한 악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이는 그가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과 연결됩니다. 피아노가 수리 불가능 판정을 받았을 때의 충격은 그의 삶에서 얼마나 큰 상실감을 의미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타인웨이 사의 아티스트로서 받았던 극진한 대우는 굴드의 음악적 재능을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그가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자신의 편안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예술적 성취와 연관된 특별한 혜택이었죠. 이는 현대의 연예인들이 소속사로부터 받는 지원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또한, 굴드가 항상 가지고 다녔던 접이식 '난쟁이 의자'는 그의 독특한 취향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정한 높이와 자유로운 이동성은 그의 연주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자들의 증언은 굴드가 단순한 천재 뮤지션 이상의 인물임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허세 없는 태도와 소탈함은 그를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었고, 아이 같은 순수함은 그의 예술 세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굴드가 다림질도 안 한 헐렁한 양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그의 독창적인 성격과 예술적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음악과 인생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글랜 굴드의 피아노 의자